여행자로 교육자로

소프트웨어 및 제품 개발에 십여년 이상 경력을 가진 Ian Bennet은, 여행객 및 여행 가이드로서, 그리고 조선 교류의 워크숍 리더로서 북한을 여러 번 방문했다.

DPRK를 여행객 및 교육자로서 방문했던 그가 경험했던 것을 여기에 회상해 본다. 

동이 트기 전, 나는 평양 중앙의 대동강변을 조깅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들이 일터로 가고, 군복 입은 건설 인력들이 강가에서 몸을 씻고, 밝은 색 옷을 입은 여자들이 웃으며 배드민턴을 치고, 길가의 스피커에선 충성심을 고양시키는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반바지를 입은 깡마른 턱수염 외국인인 나를 사람들이 나를 흘끗 쳐다보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 보다는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나와 함께 온 일행들은 호텔에서 아직 잠을 자고 있었고, 나는 이 땅에서 혼자였다.

고려 투어라는 베이징 주재 유명 여행사가 매년 2000명의 여행객을 북조선 안팎으로 실어 나르는 것을 보면, 이 나라는 벌써 몇 년째 외국인에게 개방되어 있었다.여행의 범위는 점점 넓혀지고 있어서, 평양 근처의 헬리콥터 비행, 산악 자전거 여행, 북조선 가정에서의 홈스테이, 연례행사인 평양마라톤에 참가할 수도 있었다.‘도대체 어떻게 북조선에 갔지?’라는 질문은 이제 구식이 된 지 오래다; 북조선 방문객들은 대부분, 베이징에서 중국 비자를 받는다.  

모든 여행객은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미리 짜여진 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몇몇 여행객은 가이드의 눈을 피해 지루한 일정 사이에 ‘슬쩍’ 사진을 찍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이기적인 행동이다. 외국인에게는 큰 모험이 아니지만, 북조선 가이드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서방서계에 오랫동안 닫혀있던 나라이기 때문에 – 이를 거스르는 개인적인 행동은, 그들을 더욱 방어적으로 만들 뿐이다.

2010 년에 백두산에서 젊은 학생들과 함께

2010 년에 백두산에서 젊은 학생들과 함께

동상에 고개를 숙이거나 군인 및 건축현장 사진 촬영을 하지 않는 등의 몇 가지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에겐, 북조선/북한 방문은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기존의 많은 질문들에 해답을 찾음과 동시에, 몇몇 새로운 사실에 의아해 하게 되는 경험 말이다. 평양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꽤 괜찮아 보여서, 미국달러를 이용해 식사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수입품도 구매하고 있다. 택시와 이동 전화 네트워크도 있어서, 내국인들은 인트라넷으로 연결된 북조선산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피자 주문도 한다.소형양조장, 그럴듯한 커피숍과 퐁듀 레스토랑까지 있다. 사람들은 외부 세계 및 자국의 상대적인 경제발전에 대해 꽤 잘 알고 있고, 몇몇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기까지 한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보다 더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대다수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 다른 모든 이들처럼 –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종종 묘사되는 세뇌된 로봇 같은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방금 만난 외국인들과 예민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이를 존중하지 않고, 여기에 대해 토론하고자 한다면, 이 나라의 거친 면을 알게 될 수도 있다.

혼자 조깅을 나간 것은 가이드에서 잠깐 해방되기 위함이 아니라, 신뢰에 기반한 특권 같은 것이었다. 나는 여행객으로 온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에 주재한 비영리단체인 조선교류의 교육비자로 방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교류(CE)는 평양에 외국 기업리더를 초빙하고, 북조선에서 싱가포르 및 그 외 지역을 방문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워크숍 및 미니 MBA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전 워크숍 리더들은 대형 소프트웨어 회사나, 여행사, 소매업 기업 출신이거나, 자수성가한 기업가들 이었다.  북조선/북한 사람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교육한 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서 길을 찾으려 하기에, 기업관련 지식에 대해 진실로 목말라 하고 있었다. 

2015년의 CE여성 기업 워크숍에서

2015년의 CE여성 기업 워크숍에서

나는 2008년 초 남한에서 버스를 타고 (당시엔 가능했지만, 슬프게도 지금은 운행하지 않음) 중무장된 비무장지대(DMZ)을 지나, 금강산의 절경을 보기 위해 처음 북한에 왔다.  두 개의 한국이 교차되는 모습은 나를 매료시켰고, 여행객으로 여러 번 방문했다가 나중엔 여행 가이드로 방문했고, 지금은 교육을 위해 방문했다. 그 여러 해 동안 김 왕조는 세대 교체를 했고, 지방이 아닌 수도는 고층빌딩, 스타일, 태도 및 교통량 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5년 전에,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있지도 않은 차량들의 교통정리를 하며 여행객들을 즐겁게 하던 교통 경찰관 여성은; 요즘은 차량, 택시 트럭들이 몇 배로 늘어서 있는 거리에서 실제로 교통 통제를 하고 있다. 평양에서 실제 교통체증을 경험한 적은 아직 없지만, 머지 않아 보인다.

오늘 나는 평양에서 한정된 자본으로 창업 회사를 키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번 방문 교육의 주제는 ‘사업에서의 여성’인데, 다른 워크숍 리더들은 네트워킹, 바디랭 기지, 팀 만들기 등의 다양한 주제에 수업을 하고 있다. 수강생의 대부분은 북조선의 명문 비즈니스 대학교의 졸업생들이다.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뒤로 하고 양복을 입고 서서, 김일성 배지를 차고 있는 수강생들을 바라보자니, 이 방에서 미래의 셔릴 샌드버그나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있을 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그런 기업가 정신이 있을 때, 그들의 가능성을 채워줄 길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하고자 하는 투지는 분명히 있었다. 대화를 길게 하다 보니 대담하게도 평양에H&M의 체인점을 열고 싶어하는 수강생이 있었다. 정부의 규제 및 국제적인 무역 조치에 어떻게 대응하는 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그에게 진심으로 행운을 빌어본다.

여행객으로서 북조선을 방문한 것과 워크숍리더로 방문한 것은 다른 경험이었지만, 유사점도 있었다. 모자이크 및 샹들리에로 장식된 지하철과 주체탑 방문은 똑같았지만, 워크숍 리더의 일정은 좀 더 여유가 있어서, 북조선 사람들과 교류할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워크숍 수업에 할애하였지만, 평양 및 평양 인근의 다른 현장을 방문할 시간도 있었다. 워크숍 리더들은 관광지 방문 회수가 적었고, 저녁때도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고, 강 한가운데 양각도 호텔이 아닌, 시내 호텔에 묵을 수 있었다. 방문기간에 따라서, 여행객들은 함흥, 청진, 신비로운 북쪽 끝 백두산까지 연장해서 방문하며 모험을 즐길 수도 있다.   

일정이 끝날 때, 우리는 베이징 행 야간 완행 열차로 북조선을 떠났다. 북조선사람들이 우리를 기차역에서 환송하고, 수도를 떠나자 도시와 시골의 분명한 대조를 볼 수 있었다. 눈부신 평해튼(만수대) 타워에 가려져 있던 집단 농장, 비포장 도로, 소가 끌고 가는 마차 들이 보였다.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곧 다가올 추운 겨울을 준비해 줄 김치를 만들 배추를 수확하고 있었다.  강수량으로 올해 수확량이 줄어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배식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지 않더라도,수확량이 준다는 것은 이들에게 나쁜 소식임이 분명했다.   

6시간 동안 논밭과 마을을 지나자, 지평선 너머로 고층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옆 승객들의 휴대전화가 켜지고 네트워크가 연결되자 이메일과 메시지가 수신되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조선을 나누는 압록강에 다다르고 있었다. 국경을 마주한 두 도시의 대조는 너무나 극명했다. 저쪽 강둑 중국의 단동에는 고층빌딩에 네온 사인,교통소음이 가득했고, 북조선 쪽 끝에는 신의주가 반쯤 어둠에 잠겨 있었고, 도전적으로 자립을 강조하는 선전문구가 외롭게 길에 보였다. 정치적인 철학으로, 그 가치가 아직 지켜질 지는 몰라도, 경제적 및 대인적 관점에서는 이 나라는 아직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덜 닫혀진 나라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