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무의 박장대소"

우리에겐 모두 어머니가 있다. 그러나 모두가 조선인/한국인 어머니를 둔 것은 아니다.

“남북의 모든 조선인/한국인은 지칠 줄 모르고 통일을 위해 일한다.” 나는 북쪽에서 누차 이런 얘기를 들었다. 

보통 나는 예의에 어긋나게 행동하지 않게끔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북쪽도 우리 나라 같은가요?” 한번은 남쪽 사람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적이 있다. 

나는 보통 그 대답으로 “어떤 점은 매우 비슷하기도 해요.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얼굴 벌건 아저씨들, 강변에서 떼지어 소풍 와서 수다 떠는 아줌마들, 앞서 나가기 위해 적절한 수준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하는 학생들처럼요.”라고 말하고는, “그런데 하지만 70년새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죠. 이제 거의 모두가 한 나라였던 조선/한국을 기억하지 못해요. 그리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제 곧 세상을 뜨겠지요. 그 사이에 많인 것들이 우여곡절 끝에 변했어요. 그래서 이제는 동일한 문화로 보기 어려워 졌습니다. 아주 달라졌죠.”

한 남쪽 사람은 내가 이렇게 설명하자 자조적인 목소리고 나즈막히 말했다. “젠장”

그가 속된 말 한 마디로 깔끔하게 요약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단일 문화, 단일 국가를 보존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더 오래 이어진다면 동일성을 지키기가 더 힘들어지겠죠. 우리는 이 점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가슴 아프죠.”

조선/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남쪽과 북쪽 서로가 같은 공동체의 일부분이라고 상상하는데 이 점은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서로 다른 남쪽과 북쪽을 보고 있기란 우울한 일일 수 있다. 게다가 남쪽과 북쪽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크게 달라진 지금, 그들이 외부 세력에 맞선 단호한 투쟁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종종 빠지기도 한다는 점 역시 '공통된 문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단일성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은 세세한 차이점들에 함몰되어 버린다.

그래서 내가 이번 주에 베이징에서 고려그룹의 뛰어난 로맨틱 코미디 영화인 ‘김동무는 하늘을 난다’를  다시 보게 됐을 때 나는 얼마간 기뻤다. 영국과 벨기에와 북조선/북한이 합작하여 만든 이 영화는 용기와 행운, 노력을 통해 곡예사가 되려는 광부의 꿈이 실현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내가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주로 남쪽 관객들을 대상으로 상영될 때와 달리 그때처럼 재미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를 두 번째로 볼 때는 왜 전보다 웃기지 않았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이유가 있었다. 부산의 남쪽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포복절도를 했는데 그게 나에게도 옮아간 것이었다. 베이징에서 영화가 상영될 때는 관객 대부분이 서방 사람이었는데 이들은 영화에 대한 인류학적 실험을 예의 바르게 즐겼다. 이들은 아마도 자막과 함께 영화를 볼 때 생기는 모호한 자축 분위기에 휩싸인 듯 했다.

그런데 부산에서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어머니 캐릭터가 하는 모든 일이 즐거운 웃음 소리로 맞아떨어졌었다. 그녀는 영화에서 비중이 크진 않았지만 그녀가 나올 때면 아들 일에 사정없이 끼어들었다. 주로 그녀는 로맨틱한 어떤 장면을 막아버리는데 민감했지만 그런 기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아들의 숙취를 위해 날달걀과 김치국물을 섞은 것을 억지로 그에게 먹이기도 했다. 북쪽에서 이 영화를 본 친구들은 평양의 관객들 역시 비슷하게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감독 중 한 사람인 닉 보너는 “우리는 여자가 힘을 쓰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북쪽 관객들을 위해 만든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들의 선입견은 접어두도록 하세요.”라고 말했다.

우리가 노력해보긴 했지만 '참견쟁이 어머니'는 우리에겐 공감되지 않았다. 우리는 조선인/한국인이 아니며 우리 중 대부분은 살면서 그런 인물을 접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남쪽에선 모두 그런 인물 유형을 한명쯤은 알고 있다.

부산의 영화제 중 Q&A 시간에 어떤 관객은 이런 말을 툭 던지며 질문의 운을 뗐다. “이야, 정말 우리 엄마랑 똑같네.”

보너는 김동무가 북쪽 관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은 모든 조선/한국 관객을 위한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남과 북이 70년 넘는 분단의 세월 동안 발전시켜 왔던 생각과 생활, 노동의 현대적인 방식에는 수많은 차이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공통점들이 계속 남아있음을 귀엽게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그 참견쟁이 엄마처럼 말이다. 이것은 희망적인 일이다. 

번역: 김예지